Sodang Gallery의 개설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소당 선생은 여러 해 전에 세종문화회관에서 그 소장품 전시회를
개최한 바가 있습니다만, 그때 보지 못했던 많은 분들이 누구나 자기 안방에 앉아서 이것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으니 참으로
기쁘고 다행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더구나 일일이 작품에 자세한 설명을 가하여 미술사 공부에도
도움을 주고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내년이면 고희를 맞이하는 연세에 그토록 왕성한 연구열과
컴퓨터 작업을 해내는 열의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공자께서 이르기를 옳은 인생을 살고자 하면 마땅히 "도에
뜻을 두며 덕을 굳게 지키며 인에 의지하며 예에 노닐어야 한다...
(志於道 據於德 依於仁 游於藝)라고 하였습니다.

소당 조덕영선생은 그 이름자 그대로 높은 도덕심과 예술애호의 정신으로 일관되게 평생을
살아온 분입니다.
내가 선생을 좋아하고 아끼며 존경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소당 선생의 인터넷 전시를 통해서 선인들의 생활과 멋 속에 우리 함께 깊숙이 젖어드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하며 특히 공공기관이나 학교 박물관 교육에 많은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04년 4월 21일

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
전 숙명여자대학교 박물관장
문학박사 권덕주(權德周) 드림



조용훈(趙容勳) 1887~1959
본관은 林川 자는 聖佐 호는 松齋 시조는 嘉林伯 天赫 현조는
판서 萬碩의 15세손 공조참판 潤植의 아들 소당 조덕영 (趙德英)의 아버지 전북 익산생

어려서부터 효성이 뛰어났으므로 마을 사람들이 효동이라
애칭했다. 14살 때 어머니가 중병으로 눕게 되자 '내 몸을 바칠
터이오니 어머니를 낫게 하여 주십시오' 하고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기도 하였고 어머니 곁을 잠시도 떠나지 않았으며 온갖 약을
쓰고 병세를 헤아리기 위해 대변을 맛보기도 했다.
병세가 위중해지자 손가락을 일곱 번이나 째어 피를 드려서
3일간 연명을 시켰다.
그러나 끝내 어머니가 죽자 3년 상을 치르는 동안 여막에서 거상하면서 철이 바뀌어도
상복을 갈아입지 않은 채 조석으로 호곡 하였다.

그 후 학업을 닦고 있을 때 사헌부 감찰에 재직중인 아버지가 급환으로 위독하게 되자
학업을 중단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병간호에 온갖 정성을 다 들였다.
병세가 차츰 위중해지자 가동(하인)에게 식칼을 가져 오라 하기에 그의 부인이 식칼을 숨겨
버렸다. 그러자 그는 밖에 가서 녹슬은 식칼을 구해 다 남모르게 사랑방으로 들어가 오른손
무명지를 책상 위에 얹어 놓고 힘껏 내리쳤으나 칼이 무디어서 손가락이 끊어지지 않았다.
두 번 세 번 쳐서 잘라진 손가락을 약탕에 넣어 아버지에게 드렸다.
그러한 지성의 보람도 없이 아버지가 운명하니 관을 붙들고 몸부림치며 애통해 하는 정상은
눈으로는 차마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잘라진 손가락 마디에서 흐르는 피가 관을 빨갛게
물들였고 몸이 쇠약해져서 생명을 잃을 정도였다.
3년 상을 치르는 동안 조석으로 성묘하며 곡하는 일을 거르는 날이 없었고 상복의
소맷자락에서는 땀과 눈물이 섞여 떨어졌으며 엎드려 울며 곡하던 자리의 풀이 말라
죽었다고 한다.

1908년 조정에서 이 사실을 알고 그의 아버지 潤植을 공조참판에 추증하고 아들 容勳에게
도총부 도사를 특재 하였다. 그 후 한일합방이 되어 寺內(데라우찌)총독이 기용하려고
회유했으나 뿌리치고 유교와 기독교 발전에 심혈을 기울였다.
문장에 뛰어났고 해서를 잘 썼으며 저서로 송재문집(松齋文集)이 있다.
아들 德英은 현재 은평구 은평로3가길 22-14에서 관고재(고서화 전문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문헌 속수삼강록(續修三綱錄)동헌비고록 (東獻備考錄) 대한충의효열록(大韓忠義孝烈錄)

소당 선고(아버지) 송재(松齋) 조용훈 위친계첩 서문(趙容勳 爲親契帖 序文)
소당 조고(할아버지)의 장례식 광경 (小堂 祖考의 葬禮式 光景)

   조용훈 포장(趙容勳 褒狀)

   조용훈 경통(趙容勳 敬通)



이 창을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대의 유품이 인연이 되어 그저 옛 것이 좋아 그것에 도취되어
고서화 수집에 뜻을 둔지 20여년, 무딘 안목과 주어진 여건때문에
빼어난 명품들이 아닌 평범한 선인들의 유묵자료전을 갖게 된
것을 외람되이 생각합니다.
요즘 우리 주변에는 한정된 작품만을 기호 선택하며 그 외의
작품들은 전혀 작품으로서의 가치와 평가를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허나 역사는 그 몇몇 사람들의 작품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오
그 당대의 명현석학 의인열사와 초야에 묻힌 훌륭한 작가들이
있었기에 그 나름대로의 인식과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물질만능의 그릇된 풍조에 젖고 충효사상과 도의교육 그리고
옛 것에서의 아름다움을 찾으려는 정신이 점차 사라져 가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이 작은 창을 통하여 오늘의 젊은이에게 조상들의 유묵을 통한 애국애족의 사상과 국난을 극복한 위대한 슬기 그리고 자연에서 찾아낸 선인들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여 온고지신의 마음으로 젊은이들에게 좋은 교육의 마당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여러분을 모십니다.

감사합니다.

신사년 새 봄에

소당 조덕영(小堂 趙德英)


    • 1933년 전북 익산생
    • 전주고등학교 졸업
    • 중앙대학교 법학과 졸업
    • 박물관대학 6기 수료


    • 동덕여대 비서실 근무
    • 다산 정약용선생 기념사업회 간사
    • 학원통신사 주간
    • 한일산업사 대표
    • 현 관고재 주인


    • 주 소 : 서울시 은평구 은평로3가길 22-14(신사 1동 6-48)
    • 연락처 : 02-359-1054
    • H · P : 010-3203-1054
    • F A X : 070-7396-1054
    • E-mail : sodang7202@hanmail.net